예배의 심사위원이 아닌, 진심을 잇는 예배자로


아프다. 그래서 해결해 보려고 공부했다. 그런데 그 지식이 오히려 나를 옭아매는 올무가 되어버렸다.

예배와 각종 집회의 스태프로 현장을 지킨 지 벌써 25년이 넘었다. 분주함 속에서 하나님을 가까이 느끼기도 하지만, 대개는 정신없는 일정과 결과에 대한 평가만 남아 정작 예배 자체에 집중하지 못할 때가 많았다. 주변의 동료들과 선후배들도 하나둘 상처를 입고 곁을 떠나갔다.

"이게 행사지 예배입니까? 번아웃은 오는데 케어해주는 사람은 없으니, 내가 먼저 떠납니다!"

나 역시 여러 공동체에서 그렇게 마음을 닫고 포기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순수한 회중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도 쉽지 않았다. 하나님보다 행사의 진행 상태가 먼저 눈에 들어왔고, 답답한 마음에 어느새 평가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결국 예배의 중심에 들어가지 못한 채 늘 주변을 빙빙 겉돌기만 했다.

도대체 예배란 무엇인지, 올바른 신앙생활은 어떤 것인지 답을 찾고 싶어 책을 뒤지고 권위 있는 이들의 조언에 귀를 기울였다. 딱 한마디로 정의하기란 어려웠다. 수많은 설명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이해하기 벅찬 자료들도 넘쳐났다. 그래도 배우는 과정은 즐거웠다. 그 방대한 진리의 파편이라도 알아가는 것에서 묘한 쾌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잠시나마 예배에 성공한 듯한 기분도 들었다.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며 예배하는 것이 가능해 보였다. 삶이 정돈되고, 온전히 하나님만을 위한 나만의 시간도 확보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쌓인 지식은 도리어 수많은 번뇌를 낳았다. 공동체의 예배가 예배답지 못한 모습이 보일 때마다 분석하고 정리하려 들었지만, 정작 내 마음은 평안과 거리가 멀었다. 목회자와 리더십의 말 한마디가 상처로 다가왔고, 내가 아는 지식의 잣대로 그들을 정죄하기 시작했다. 결국 나는 예배의 심사위원이 되어 홀로 가슴앓이만 하고 있었다.

진행요원도, 심사위원도 더는 하기 싫었다. 그래서 조금은 자유로운 분위기의 경배와 찬양 시간, 그리고 기도 시간에 회중 사이를 그저 걸어보았다. 분위기에 취해 있는 이들도 보였지만—아차, 또 판단이다—그중에는 정말 진심으로 하나님을 예배하고 있다는 느낌이 전해지는 사람들이 있었다.

진심. 진심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려는 그 마음.

그들의 진심이 내게 고스란히 전달되면서 깊은 뉘우침이 밀려왔다. 그 순수한 마음이 비로소 나를 다시 예배의 자리로 이끌었다. 서로의 진심이 연결되어 함께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 이것이 바로 공동체 예배가 가진 진정한 매력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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