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미디어 기술팀 - 정체성 잡기 (4) 균형잡기

 

미디어 기술자과 사역자의 균형

요즘 제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질문이 있습니다. 교회에서 미디어 관련 일을 하는 사람, 특히 저처럼 '간사'라는 직함을 가지고 실무를 담당하는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 우리는 그저 기술을 다루는 '기술자'일까, 아니면 예배와 메시지 전달을 돕는 '사역자'일까? 어쩌면 그 둘 사이 어딘가에 있는 존재일까? 이런 정체성에 대한 고민들을 정리하고 글로 남겨보는 과정 중에 있습니다. 이 글도 그 고민의 한 조각입니다.





두 마음 사이의 작은 갈등들

이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자연스럽게 여러 내적 갈등으로 이어집니다. '기술자'로서 우리는 필연적으로 세상의 기술과 트렌드를 배우고 익혀야 합니다. 카메라, 음향 장비, 편집 소프트웨어, 조명 기술 등... 이 모든 것들은 대부분 세상에서 발전시킨 도구들이죠. 그런데 우리는 이 도구들을 '사역자'로서 거룩한 예배와 하나님의 메시지를 위해 사용해야 합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긴장이 발생합니다.

어디까지 세상의 기술과 미학을 수용해야 할까? 혹시 나도 모르게 기술 자체에 매몰되어 본질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화려하고 세련된 결과물을 추구하는 마음이 예배의 경건함이나 메시지의 진정성보다 앞서는 순간은 없을까? 기술 연마에 쏟는 시간과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교제 시간 사이의 균형은 어떻게 찾아야 할까?

게다가 이 고민은 관계 속에서도 나타납니다. 교회 리더십이 미디어 사역에 기대하는 바(때로는 안정성이나 효율성)와 제가 개인적으로 추구하고 싶은 기술적/예술적 완성도, 그리고 실제 예배에 참여하는 성도님들이 편안하게 느끼거나 필요로 하는 수준(익숙함이나 명료함 등)이 서로 부딪힐 때, '기술자'로서의 전문성과 '사역자'로서의 조율 능력 사이에서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지 혼란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다니엘의 지혜를 빌려오며

이런 복잡한 정체성의 고민 속에서 다니엘이라는 인물을 다시 생각해보게 됩니다. 그는 바벨론이라는 거대한 제국 시스템 안에서 고위 관료, 즉 세상적인 기준으로 보면 매우 유능한 '전문가' 또는 '행정 전문가'였습니다. 그는 그 사회의 언어와 학문, 법률과 행정 절차를 익히고 활용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그 모든 것을 초월하는 '하나님의 사람', 즉 '사역자'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는 어떻게 이 두 가지 정체성을 조화시켰을까요? 왕의 신임을 받는 관리로서의 역할과 하나님을 섬기는 선지자로서의 역할 사이에서 어떤 내적 고민과 선택의 순간들을 마주했을까요? 성경은 그의 놀라운 업적과 믿음의 결과들을 보여줍니다. 왕조가 바뀌고 나라가 바뀌어도 다니엘은 늘 그 자리에서 인정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니 그 과정에서 그가 느꼈을 정체성의 긴장감이나 역할 갈등은 어떠했을지 더 궁금해집니다. 어쩌면 그 역시 '세상의 전문가'와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두 정체성 사이에서 균형을 잡기 위해 부단히 씨름하며 하나님의 지혜를 구했을 것입니다. 그의 삶은 제 정체성 고민에 하나의 참고점 혹은 질문거리를 던져주는 것 같습니다.





매일의 균형을 찾아가는 길에서

그래서 저의 이 정체성에 대한 고민과 그로 인한 내적 갈등이 쉽게 해결될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기술자'과 '사역자'라는 이분법적인 정의 자체가 저의 고민을 더 복잡하게 만드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이 여정 속에서 몇 가지 방향성을 더듬어 봅니다.

  • 결국은 '왜'라는 질문: 제가 다루는 기술 하나하나가 어떤 목적을 향하고 있는지 끊임없이 묻는 과정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기술 자체의 탁월함 너머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과 '공동체를 위한 섬김'이라는 목적을 놓치지 않으려는 의식적인 노력이 중요하겠죠. 다니엘이 모든 지혜의 근원이 하나님께 있음을 고백했듯이(단 2:20-23), 저의 기술 역시 어디를 향해야 하는지 늘 점검해야 할 것입니다.

다니엘이 말했다. “하나님의 이름이 찬양받으시기 바랍니다, 영원부터 영원까지!
지혜와 힘이 하나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시간과 기간을 바꾸십니다.
임금들을 몰아내시고 임금들을 세우십니다.
지혜로운 사람들에게 지혜를 주시고, 꿰뚫어 볼 줄 아는 사람들에게 이해력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깊은 것과 감추어진 것을 드러내십니다.
어둠 가운데 무엇이 있는지를 아십니다.
빛이 하나님 곁에 머뭅니다.
나의 조상들의 하나님, 주님께 내가 감사하며 찬양합니다. 지혜와 힘을 나에게 주셨으니까요.
(새한글성경, 다니엘 2장 20절~23절)


  • 정직함과 소통의 중요성: 여러 기대치가 충돌할 때, 제 기술적 판단이나 예술적 견해만을 고집하기보다, 각 입장을 경청하고 상황을 정직하게 공유하며 함께 최선의 길을 찾아가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다니엘이 그의 대적들에게서조차 직무상의 흠을 찾을 수 없었던(단 6:4) 그 성실함과 정직함이, 어쩌면 이런 소통과 신뢰의 기반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러자 총리들과 지방 장관들이 왕국과 관련하여 다니엘을 고발할 구실을 찾아내고자 애를 썼다. 그러나 그들은 어떤 구실이나 부패도 찾아낼 수 없었다. 그가 믿음직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어떤 게으름이나 부패도 그에게서는 드러나지 않았다.
(새한글성경, 다니엘 6장 4절)

  • 나를 지키는 영적인 습관: 기술의 세계에 깊이 빠져들수록, 역설적으로 더욱 의식적인 영적 습관이 필요함을 느낍니다. 다니엘이 정해진 시간에 기도하기를 멈추지 않았던 것처럼(단 6:10), 저 역시 분주한 일정 속에서도 하나님과 개인적으로 만나는 시간을 확보하고 말씀과 기도로 제 중심을 잡으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미디어 기술자'가 아닌 '하나님을 섬기는 미디어 기술자'으로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일지도 모릅니다.

다니엘은 다리우스가 그 문서에 서명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도 자신의 집으로 가서 위층 방의 창문들을 열고, 예루살렘을 향했다. 그러고는 하루에 세 번 무릎을 꿇고서 자신의 하나님 앞에서 감사 찬양의 기도를 드렸다. 그전부터 이렇게 해 왔기 때문이다.
(새한글성경, 다니엘 6장 10절)


'미디어 기술자'와 '사역자' 사이, 저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고민은 아마 계속될 것입니다. 하지만 어쩌면 명확한 하나의 정의를 내리는 것보다, 이 긴장감 속에서 균형을 잡으려 애쓰고, 주어진 역할 안에서 신실하게 살아내려는 그 과정 자체가 저의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니엘의 삶이 그러했듯, 세상의 기술과 지식을 사용하되 그 중심에는 하나님을 두려는 이 고민과 노력이, 저를 조금씩 성장시켜 주기를 바랄 뿐입니다.





함께 읽기

1. 정체성 세우기

2. 소명과 역할

3. 열심과 순종

4. 균형잡기(현재글)

5. 슬럼프에 빠졌을 때

0 댓글

댓글 쓰기

Post a Comment (0)

다음 이전